Works 2009-12
이동식 집
2011
캔버스에 유채
64 x 51 in inches (162 x 130cm)
2011
캔버스에 유채
64 x 51 in inches (162 x 130cm)
정착을 원하는 도시유목민들의 바램을 표상하고, 그들의 삶과 그들의 이상을 충족시키는 중간적 타협의 위치에서 휴식의 공간을 제시한다.내가 옮겨가는 크고 작은 상황의 변화에 따라 나는 수없이 많이 근거지를 옮겨 다녔다. 너무 빠르게 변하는 도시 ‘서울’ 이곳에서 나에게 ‘집’이란, 언제든 변하거나 사라질 수 있는 가시적인 정거장, 그 이상 그 이하의 의미도 되지 못했다.
땅에 몸을 붙인 건물들의 벽은 차갑고, 그곳에 나의 메시지나 사진, 생활품들을 늘어놓아도 이곳은 엄연히 나의 역사를 담아온 공간의 느낌, 내가 정착해 살아가고 있다는 어떤 안정감을 주진 못했다. 또다시 어디론가 옮겨갈 준비를 해놔야 하는 붕뜬 마음을 한구석에 항상 가졌기 때문이다.쉴 수 있는 공간, 내가 ‘나’임을 상기시킬 돌아갈 공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곳곳의 매체들에 의해서 감시당하고, 압박스럽게 쏟아져 나오는 정보는, 내가 자고있는 시간에도 핸드폰으로 수없이 수신되고 있다. 그것들의 가치 유무를 분간해낼 시간조차 주지않는 큰 파도같은 도시속에서, 우리는 이미 ‘나’라는 것의 정체성을 찾는 이유조차 잃어버렸는지도,
말로 설명하기도, 화면으로 떠올리기에도 막연하지만, 우리는 가슴속에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는, 내가 돌아갈 휴식처, 노스텔지어의 공간이 있다.나는 그들 ‘我’의 향수에 형태를 부여하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
내가 하는 일은 의사의 답변처럼 기술적인 방향성을 제시하진 못하겠지만, 나는 그들의 심혼이 원하는 그 마음의 부유물들에게 간접적 연관성의 형태를 보여주고, 그 담장너머의 영역에도 충족과 안정 ‘인식’의 form이 존재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주변 환경으로부터 주체적으로 뽑아낸 요소들로 새로운 화합물을 만들고, 그 동력으로 움직이는 집, 이집은, 잡히지 않는 자아의 주변감성을 인지해서 의식의 결정체로 제조할 수 있는 공간이며 그것들은 외부로 자연스레 돌려 보낼 수 있는 ‘가치’의 집이다.
나를 대변하고, 나를 표상하는 역사의 공간. 그것은 빠른속도로 변해가는 도시속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축적된 정체성을 가진 공간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다.그리고 언제든 외부와 connecting 할 수 있는 능동적인 공간이다.
이것은 ‘나’의 집이자 ‘우리’의 집이다. 언제든 상황에 맞는 장소에 뿌리 내릴 수 있는 정착의 집이고 유목의 근거지이다.
땅에 몸을 붙인 건물들의 벽은 차갑고, 그곳에 나의 메시지나 사진, 생활품들을 늘어놓아도 이곳은 엄연히 나의 역사를 담아온 공간의 느낌, 내가 정착해 살아가고 있다는 어떤 안정감을 주진 못했다. 또다시 어디론가 옮겨갈 준비를 해놔야 하는 붕뜬 마음을 한구석에 항상 가졌기 때문이다.쉴 수 있는 공간, 내가 ‘나’임을 상기시킬 돌아갈 공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곳곳의 매체들에 의해서 감시당하고, 압박스럽게 쏟아져 나오는 정보는, 내가 자고있는 시간에도 핸드폰으로 수없이 수신되고 있다. 그것들의 가치 유무를 분간해낼 시간조차 주지않는 큰 파도같은 도시속에서, 우리는 이미 ‘나’라는 것의 정체성을 찾는 이유조차 잃어버렸는지도,
말로 설명하기도, 화면으로 떠올리기에도 막연하지만, 우리는 가슴속에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는, 내가 돌아갈 휴식처, 노스텔지어의 공간이 있다.나는 그들 ‘我’의 향수에 형태를 부여하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
내가 하는 일은 의사의 답변처럼 기술적인 방향성을 제시하진 못하겠지만, 나는 그들의 심혼이 원하는 그 마음의 부유물들에게 간접적 연관성의 형태를 보여주고, 그 담장너머의 영역에도 충족과 안정 ‘인식’의 form이 존재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주변 환경으로부터 주체적으로 뽑아낸 요소들로 새로운 화합물을 만들고, 그 동력으로 움직이는 집, 이집은, 잡히지 않는 자아의 주변감성을 인지해서 의식의 결정체로 제조할 수 있는 공간이며 그것들은 외부로 자연스레 돌려 보낼 수 있는 ‘가치’의 집이다.
나를 대변하고, 나를 표상하는 역사의 공간. 그것은 빠른속도로 변해가는 도시속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축적된 정체성을 가진 공간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다.그리고 언제든 외부와 connecting 할 수 있는 능동적인 공간이다.
이것은 ‘나’의 집이자 ‘우리’의 집이다. 언제든 상황에 맞는 장소에 뿌리 내릴 수 있는 정착의 집이고 유목의 근거지이다.
미묘한 축제에 초대받은 자들
2010
캔버스에 유채
153 x 38 in inches (388 x 97cm)
2010
캔버스에 유채
153 x 38 in inches (388 x 97cm)
이 작업은 내 머릿속에 가득 찬 환영들의 축제이다. 이 환영들로 인해 사고를 방해 받고 수면의 빼앗긴다. 이 그림은 그 시간에 생성되는 이미지들을 위해 내가 무대를 제공하는 이야기 이다. 캔버스 위에 제작된 stage위에 내 머리 속에 쏟아지는 수많은 환영들 중 몇몇을 선택해 초대한다. 각각의 이미지들은 서로 연관성 없이 선택되지만 그 환영들은 무대 위에서 함께 조화를 이루며 행진하듯 배치된다. 캔버스 중앙에서 양 옆으로 그 환영들은 대립구도를 취하고 있다. 그 환영들의 배치는 나의 지휘하에 조직된다.
이 지휘는 머릿속 환영들을 다루는 나만의 창작활동이고, 승화이다. 머리 속에서 우후죽순 생겨나는 이미지들은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나의 의식구조를 차갑게 뚫고 올라오지만, 나의 주체적 지휘는 언제나 모든 것을 경계하며 캔버스 위의 형상들을 감시한다. 작업을 하는 동안, 내가 캔버스에 그려 넣는 이미지 들은 역할을 가지게 되고. 서로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형상을 만들어낸다. 나는 캔버스라는 무대 위, 좌, 우에 이미지들을 대립구도로 그려 넣었다. 나는 내 머릿속의 환영 생성을 막을 수 없다. 나는 그저 그것들을 지휘하고 선택할 뿐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나는 나의 주체성과 통제력을 회복한다 그리고 나는 구현된 이미지로 화면 속에서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캔버스 양 옆으로 대칭을 이루는 추출된 이미지 들은 비슷하거나 반대되는 환영들이 종합, 통일된 단계이며, 캔버스 위에서 이미지들은 비슷하거나 반대되는 환영의 두 개의 특성이 사라지고, 반대로 함께 살아나서 통일되기도 한다.. 나와 꿈틀거리는 환영들 간 ’합일’의 집약적 표현이고,캔버스는 ’축제’의 끝나지 않을 피날레를 상징하게 된다.
이 지휘는 머릿속 환영들을 다루는 나만의 창작활동이고, 승화이다. 머리 속에서 우후죽순 생겨나는 이미지들은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나의 의식구조를 차갑게 뚫고 올라오지만, 나의 주체적 지휘는 언제나 모든 것을 경계하며 캔버스 위의 형상들을 감시한다. 작업을 하는 동안, 내가 캔버스에 그려 넣는 이미지 들은 역할을 가지게 되고. 서로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형상을 만들어낸다. 나는 캔버스라는 무대 위, 좌, 우에 이미지들을 대립구도로 그려 넣었다. 나는 내 머릿속의 환영 생성을 막을 수 없다. 나는 그저 그것들을 지휘하고 선택할 뿐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나는 나의 주체성과 통제력을 회복한다 그리고 나는 구현된 이미지로 화면 속에서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캔버스 양 옆으로 대칭을 이루는 추출된 이미지 들은 비슷하거나 반대되는 환영들이 종합, 통일된 단계이며, 캔버스 위에서 이미지들은 비슷하거나 반대되는 환영의 두 개의 특성이 사라지고, 반대로 함께 살아나서 통일되기도 한다.. 나와 꿈틀거리는 환영들 간 ’합일’의 집약적 표현이고,캔버스는 ’축제’의 끝나지 않을 피날레를 상징하게 된다.
Process[W-ray]
2009
캔버스에 유채
51 x 64 inch (130 x 162cm)
2009
캔버스에 유채
51 x 64 inch (130 x 162cm)
나는 잠을 잘 자지 못했다.
내 머리속에 수많은 생소한 이미지들이 쉴새 없이 보여졌다.너무 많은 환영들로 인해서 머리가 아팠다. 그 환영들이 실제로 머리속에 쌓여 나의 머리표피가 점점 불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날 이 모든 나의 증상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게 되었다. 머리속에 쌓여있는 환영 더미속에서 건져낸 하나의 컷에서 모든 원리를 설명 할수 있었다.
이 증상의 원인은 자발적인동력을 이용해서 아주많은 환영을 제작하는 일종의 매커니즘을 가진 존재’가 머릿속에 공존하고있다는 것이다. 그 존재는 신체 여러 가지 기관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시시때때로 편두통이 일어난다, 그것은 환영이 쏟아져 나오는 신호탄이다.
편두통이 온 뒤에 머릿속 존재의 중앙동력이 가동된다. 그 환영더미들은 두피속에 쌓이면서, 몸 바깥에서 보면 실재로 존재하는 종양의 형태로 성장한다. 내가 만든 가상의 W-ray 광선으로 투시 해보았다.
내 머리속에 수많은 생소한 이미지들이 쉴새 없이 보여졌다.너무 많은 환영들로 인해서 머리가 아팠다. 그 환영들이 실제로 머리속에 쌓여 나의 머리표피가 점점 불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날 이 모든 나의 증상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게 되었다. 머리속에 쌓여있는 환영 더미속에서 건져낸 하나의 컷에서 모든 원리를 설명 할수 있었다.
이 증상의 원인은 자발적인동력을 이용해서 아주많은 환영을 제작하는 일종의 매커니즘을 가진 존재’가 머릿속에 공존하고있다는 것이다. 그 존재는 신체 여러 가지 기관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시시때때로 편두통이 일어난다, 그것은 환영이 쏟아져 나오는 신호탄이다.
편두통이 온 뒤에 머릿속 존재의 중앙동력이 가동된다. 그 환영더미들은 두피속에 쌓이면서, 몸 바깥에서 보면 실재로 존재하는 종양의 형태로 성장한다. 내가 만든 가상의 W-ray 광선으로 투시 해보았다.